
며칠간의 병원 생활 끝에 이제야 조금은 익숙해진 듯합니다. 익숙해졌다는 말이 왠지 서글프지만, 그렇기에 더욱 생각이 깊어지는 밤입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해 마음의 정리를 시작했고, 자연스레 내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언젠가 우리 가족이 될 누군가에게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1. 병원도, 내 몸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습니다
며칠간의 병원 생활 끝에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목에 꽂혀 있던 굵은 튜브도, 양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변 주머니 2개도…
처음엔 낯설고 부끄럽기만 했던 그 모습이 이젠 그저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30분마다 가득 찬 소변 주머니를 비워줘야 하기에, 아들은 한시도 제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힘들 법도 한데, 말없이 묵묵히 병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도 제 표정 하나에 얼른 일어나 줍니다.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미안하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다가, 결국 삼켜버립니다.
서울에서 바쁜 일정을 미루고 내려온 딸은, 제 머리를 조심스레 감겨주고 목욕까지 시켜줬습니다.
“엄마, 시원해요?”
부드럽게 묻는 그 말에 눈물이 났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그렇게 아이들을 씻기던 기억이 겹쳐졌습니다.
이제는 그 아이들이 저를 씻기고 간병하고 있는 시간. 참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2.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이들
이제는 언제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마음을 조금씩 정리해보려 합니다. 그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우리 아이들이었습니다.
아들과 딸은 제가 가장 사랑하고 또 가장 미안한 존재들입니다.
남편은 분명 아이들을 잘 돌봐줄 것입니다. 하지만 ‘엄마’라는 빈자리는 누군가가 채워줄 수 없는 공간이라는 걸 알기에... 저는 이 아이들이 결혼을 할 그날, 엄마의 빈자리가 덜 아프도록 지금 미리 인사를 남기기로 했습니다.
펜을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써 내려가는 편지. 눈물이 자꾸 흘러 종이를 적셨습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자꾸만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이 아이들이 겪게 될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제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편지로 사랑을 전하고, 아이들의 앞날을 기도할 수 있으니...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3. 미래의 사돈에게 보내는 글
병상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보다가, 아이들이 결혼할 미래를 떠올렸습니다.
그날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없더라도, 이 아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부탁을 남기고 싶다’고요.
그래서 용기 내어 글을 써봅니다.
💌 민강이 미래의 사돈에게 드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민강이 엄마입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 제가 성질이 급한지 먼저 하늘로 여행을 떠나게 되어 이렇게 글로나마 인사를 남깁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저의 진심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랍니다.
민강이는 풍족한 환경 속에서 자라지는 못했지만,
인성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 곧고 따뜻하게 자라주었습니다.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청주로 내려와,
입주청소와 에어컨 청소 일을 하며 공인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책임감과 효심이 지극한, 자랑스러운 제 아들입니다.
민강이가 귀한 댁의 가족이 된다면,
저의 부족한 양육이 남기지 못한 따뜻함과 지혜를
그 가정의 품 안에서 채워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잘못된 길을 가면 따끔히 바로잡아 주시고,
옳은 길을 걸을 때는 넉넉한 사랑으로 격려해 주시면,
그 무엇보다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곱고 귀한 여식을 제 며느리로, 아니, 딸로 보내주신 그 큰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에 부끄럽지 않도록, 저도 제 아들을 지혜롭고 따뜻하게 키우려 노력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아이들의 앞날에 언제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 채윤이 미래 사돈에게 드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먼저 이렇게 글로나마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과 함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직접 인사를 드릴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저는 성격이 급해 먼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고,
그저 이 글 한 장에 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봅니다.
저희 딸 채윤이는 보석같이 예쁘고 귀한 아이입니다.
저희 가족이 가장 힘든 시기에 찾아와 준,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 집안은 다시 웃을 수 있었고,
희망이 싹트는 하루하루를 선물 받았습니다.
함께 외출할 때면 주위의 따뜻한 시선과 칭찬이 이어져
딸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길이 참 행복했었습니다.
채윤이는 누구보다도 밝고 강한 아이입니다.
겉으론 씩씩하고 강단 있어 보이지만,
작은 일에도 마음 아파하는 여린 구석을 지닌 아이라는 걸
저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러니 부디, 이 아이의 부족한 점들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채윤이는 칭찬을 먹고 자라는 아이입니다.
부족함이 보일 때마다 다그치기보다는,
잘하고 있는 부분에 아낌없는 칭찬을 건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럴 때 이 아이는 더없이 힘을 얻고, 더 빛이 나는 아이거든요.
그리고, 채윤이의 선택을 저는 언제나 믿고 존중했습니다.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귀한 댁의 가족으로 인연을 맺게 된 지금 확신합니다.
채윤이를 보며 웃어주시고,
딸로 맞이해 주시길…
제가 미처 다해주지 못한 사랑,
귀한 댁에서 듬뿍 안겨주시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건강하고 넓은 마음을 지닌
귀한 아드님을 제 딸의 인생 반려자로 맞이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저희 가족에게는 든든한 아들 같은 존재가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이 인연이 꽃처럼 피어나
오래도록 향기를 잃지 않기를,
하늘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채윤이 엄마가 하늘에서 드립니다.
마무리
오늘도 병원 침상 위에서 글을 씁니다.
밤하늘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이 마치 편지지 같기도 하네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살아보려 합니다.
이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오늘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아 편지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