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뽈대를 잡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 언제 오를지 모르는 열 때문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하나의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바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나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심리적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가족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저는 스스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1. 돌돌이로 감당될 거라 생각했어요
머리카락이 한두 가닥 빠지기 시작했을 때,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돌돌이를 꺼내 방안을 돌며 청소하고, 혹시 빠져도 감추면 되지 싶어
예쁜 창모자를 두 개나 사두었죠.
조금 빠지다 말겠지.
그땐 정말, 이 모든 게 금방 지나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돌돌이에 붙는 머리카락이 점점 많아지더니
돌돌이 전체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돌돌이로도 감당할 수 없는 뭉텅이가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제야…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변화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2. 거울 속 '골룸'과 마주하다
항암 샴푸도 써봤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러 제품을 알아보고 써봤지만
점점 달라지는 내 머리, 내 얼굴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거울 속 나는, 내가 아니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비어 보이던 시기를 지나
점점 영화 속 ‘골룸’ 같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죠.
이 모습이 낯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조차도 이렇게 괴로운데, 남편과 아들, 딸은
이 변화를 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그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3. 내가 먼저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더는 가족에게 걱정과 안타까움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소울 메이트인 미용장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바쁘지? 내 머리 좀 어떻게 해줘."
그 친구는 단숨에 달려와줬습니다.
"그래, 이젠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깎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
울고 싶다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채,
머리카락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밀어갔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더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환하게 웃으며 말했죠.
“야~ 시원하다. 좋다~”
하지만 제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마지막까지 저를 스님 같다고,
예쁘다고, 멋지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또 필요하면 부르라며
등을 두드리고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은 꽤 단단해졌습니다.
아들은 머리를 민 제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 다가와
태블릿으로 '둘리 엄마'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렇게 예쁘니까 괜찮아요.”
그날 이후, 저는 '둘리 엄마'가 되었습니다.
가족이 있어, 이 변화마저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사랑은 머리카락보다 단단합니다
머리를 밀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감추려 애쓰던 시간보다,
받아들이고 웃으며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따뜻하더군요.
머리카락이 없는 제 모습을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이제는 그 모습도 저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픔 앞에서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저는 오늘도 웃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머리카락보다 훨씬, 훨씬 단단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