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일, 나는 큰 수술을 앞두고 세종충남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세상은 평소처럼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고 묘했다. 짐을 싸며 나는 마치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설렘 반, 두려움 반의 감정 속에 있었다. 가족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집안 곳곳을 눈에 담았고,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엔 조용히 나 자신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눈을 떴고, 살아 있었다. 이 글은 수술 전후의 감정과 가족의 사랑, 그리고 다시 살아나고자 하는 나의 의지를 담은 이야기다.
1. 짐을 싸며,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어요
입원하기 이틀 전부터 짐을 하나하나 챙겼습니다.
세면도구, 수건, 양말, 간편한 옷가지, 그리고 혹시 병원 안에서 잠깐 산책이라도 나가게 될까 봐 챙긴 얇은 가운까지.
딸아이가 제 짐을 보더니 웃으며 물었습니다.
“엄마, 여행 가세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그랬어요.
진짜 여행도 아니고, 마음이 들뜨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어쩐지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걸까요.
두려운 수술을 앞두고서도 마음 한편은 평온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담담함을 가장한 체념이었을지도 모르죠.
4월 2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 저는 제 방 한가운데에 서서 작은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동안 잘 지냈어. 혹시 내가 다시 못 돌아오더라도 서운해하지 말고…
혹시 다시 온다면, 더 행복한 추억 많이 만들자.’
우리 집구석구석을 천천히 둘러보고, 눈에 꼭꼭 저장해 두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2. 수술실 앞, 딸의 목소리에 흔들린 마음
병원 수속을 마치고 9층 병동으로 올라갔습니다.
낯선 병실, 낯선 침대, 낯선 창밖 풍경.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겁지 않았습니다.
첫날은 아들이, 둘째 날은 딸이 저와 함께 밤을 지새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4월 4일.
수술 당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수술실 문 앞에서 딸아이가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 작은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에, 그간 참아왔던 감정이 울컥 올라왔습니다.
“엄마, 수술 잘 받고 와요. 우리 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엄마는 오뚝이라 잘 될 거예요.
이따 봐요. 꼭 봐요.”
딸의 그 말에 저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잘 받고 올게.”
하지만 속으로는 애가 탔습니다.
혹시… 정말 혹시라도 이 모습이 딸에게 비치는 마지막 모습이 될까 봐.
걱정하는 딸 앞에서 눈물은 보일 수 없기에, 저는 그저 미소로 응답했지만
그 미소 뒤에는 수없이 많은 말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사랑해.
엄마가 더 잘해줄 걸 그랬지.
이렇게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널 걱정시키는 엄마라 미안해.’
3. 다시 깨어났을 때, 세상이 달라 보였어요
수술실 안은 차가웠습니다.
마취가 시작되자 모든 감각이 하나둘씩 사라졌고
의식의 끈이 끊어지기 직전, 저는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정선아, 그동안 수고했어.
모든 걸 내려놓자. 이제는 의사 선생님과 신의 손에 맡겨야지…’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누군가 자꾸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눈 떠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귀찮았습니다. 정말로.
그냥 이대로 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이 자꾸 절 이끌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병실 천장, 그리고 남편의 얼굴이었습니다.
그가 제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또 깨우고, 깜빡 졸면 또 말 걸고…
집에서도 귀찮게 하더니 병원에서도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걸, 저는 그때야 조금씩 느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술 잘 됐습니다. 다행히 경과도 좋고요.”
그 말에 저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다시 숨 쉬고, 다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 이 삶, 더 단단히 붙들고 살아야겠어요
4월 4일, 저는 두 번째 삶을 선물 받았습니다.
수술 전, 병실 복도에서 남편과 아이들의 발걸음을 보며
‘저 아이들 곁에 더 있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던 나.
이제 다시 그 바람을 안고 병원생활을 시작합니다.
매일이 새롭고, 매 순간이 기적입니다.
가족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
의사 선생님들 덕분에 다시 숨을 쉽니다.
이제는, 제 삶을 조금 더 단단히 붙들고 싶습니다.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그리고 희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