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4일, 저는 항암주사 4차를 맞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변주머니를 제거할 수 있다는 희망에 설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기적을 제일 먼저 전하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엄마였습니다.
어릴 적 100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엄마 앞에 달려가던 그때처럼,
저는 오늘 제 기쁜 소식을 엄마에게 자랑하러 갔습니다.
1. 8월 14일, 작은 기적을 기대하며
아침 8시 전에 채혈을 하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무려 두 시간을 서 있었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기다렸습니다.
이런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서자, 저와 아들은 숨을 죽인 채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았습니다.
"좋은데요. 결과가 아주 좋아요. 암 수치도 거의 정상이네요."
선생님의 웃는 얼굴과 함께 들려온 이 한 마디.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 모릅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고, 고개를 숙여 연신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쁜 소식.
소변주머니를 제거할 수 있는 처방도 내려주셨습니다.
8월 14일.
제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2. 소변주머니와 이별한 날
항암주사를 맞은 뒤, 허리에 삽입된 튜브를 제거했습니다.
오랜 시간 몸에 있었던 탓인지, 살이 많이 붙어 있어서 제거하는 과정은 몹시 아팠습니다.
그 자리에 움푹 팬 보조개 같은 흉터가 양쪽 허리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프다는 생각보다 기쁨이 먼저였습니다.
앞으로는 병원 갈 때 소변주머니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누군가 저를 본다면,
"항암주사 맞으러 온 사람이 왜 이렇게 기뻐할까?"
의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 작은 자유가 너무나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3. 엄마에게 자랑하러, 목련공원으로
기쁜 마음을 안고 저는 제일 먼저 엄마를 찾아갔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목련공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었지만,
그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습니다.
내일, 8월 15일은 엄마가 하늘로 소풍을 떠나신 지 꼭 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평소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이 날은 진정한 해방의 날이 되었겠지요.
엄마 앞에 서자, 저는 마치 어릴 적 100점 받은 시험지를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엄마, 나 소변주머니 뗐어!"
목소리가 떨렸지만, 웃음이 났다.
소변주머니를 차고 힘들어하던 내 모습을 하늘나라에서도 걱정하며 바라보셨을 엄마.
나는 엄마를 향해 크게 외쳤습니다.
"엄마~~ 이게 다 엄마 덕분이야.
올 때마다 나 힘들다고 푸념하고, 나 잘 살게 해달라고, 안 아프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미안해...
그런데... 앞으로도 부탁할게..."
눈을 감고 엄마에게 고백했습니다.
힘든 모습 보여드리지 않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계속 내 곁을 지켜달라고.
목련공원 바람이 살짝 스쳤습니다.
엄마가 제 등을 토닥여주시는 듯했습니다.
마무리
2025년 8월 14일.
저는 항암 4차 주사를 무사히 마치고, 소변주머니와 이별했습니다.
그리고 8월 15일, 엄마의 소풍 2주기를 맞이했습니다.
삶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이 작은 기적들이 모여 저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엄마, 그리고 하늘이 준 선물 같은 하루.
앞으로도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엄마, 계속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