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집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써 버티지만, 때때로 사소한 말 한마디, 감정의 작은 파도에도 휘청입니다. 병과 싸운다는 건,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요즘 더 깊이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 버틴다는 것, 나 자신과의 싸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하루의 싸움은 시작됩니다.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으니, 일어나는 것조차 전쟁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아 기어서 가고, 벽을 잡고, 침대를 딛고, 팔과 다리에 온 힘을 주어 겨우 일어섭니다.
“엄마, 다리에 근력이 있어야 혼자 일어설 수 있어요. 무리하지 말고 TV 보시면서 한발 한발 힘을 줘봐요.”
아들이 그렇게 말하며 스텝퍼를 사다 주었습니다. 생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저에게, 그 말은 마치 미션처럼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그저 방 한구석에 놓인 철제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있는 힘을 다해 발을 올려봅니다. 한 발, 또 한 발. 땀이 나고 숨이 차오르지만,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작고 느린 걸음이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한 발버둥입니다. 병에 몸은 빼앗겼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지켜야 하니까요.
🪻 “덥다”와 “춥다” 사이
한여름입니다. 창문 밖의 햇살은 따갑고, 에어컨은 하루 종일 돌아갑니다. 그런데 저는 춥습니다. 정말, 뼛속까지 시리고 아립니다. 얼음물에 다리를 담근 것처럼 시리고, 절이고, 그 감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남편은 덥다며 티셔츠만 입고 땀을 훔치는데, 저는 담요를 뒤집어쓰고도 덜덜 떱니다.
“왜 안 덥냐고, 대체 왜 그렇게 추워?”
“왜 덥다고만 해, 나는 진짜 너무 추워서 아려.”
서로의 체감 온도가 다르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감정은 따라주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신경전을 벌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각자의 공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거실에서, 저는 전기장판을 켜둔 따뜻한 방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식사 시간만큼은 함께합니다. 저는 두터운 점퍼에 양말까지 껴입고, 남편은 더운 기운에 땀을 훔치며 마주 앉습니다. 체온 하나 맞추기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픈 사람이 되는 순간, 그 작은 차이 하나하나가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 그래도, 고마운 사람
그렇게 서운했던 남편이지만, 또 그가 고마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밤새 모기에 물릴까 봐 제 팔이며 다리를 살펴주는 사람, 알람 없이도 30분마다 깨어 소변통을 묵묵히 비워주는 사람. 보신에 좋다는 음식을 알아보고, 챙기고, 힘들 법도 한데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내미는 사람.
어느 날, 저는 부엌문틈 너머로 남편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밥솥에 밥을 안치고,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그의 모습. 순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고맙기도 했지만,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생전 라면 하나 제대로 못 끓이던 사람이, 이제는 저 대신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서툴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말보다 더 깊이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는 늘 말다툼도 하고, 서로를 몰라줘 서운해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이렇게 또 하루를 견뎌냅니다.
💬 마무리하며
병은 제 몸에 왔지만, 그 무게는 우리 가족 모두가 나눠지고 있습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은 충돌과 화해 속에서, 저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남편도, 아들도, 딸도 각자의 방식으로 저와 함께 싸우고 있음을 느낍니다.
몸은 여전히 아프고, 때때로 서럽고, 춥고 시리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따뜻하게 지키고 싶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해 가며, 그렇게 우리는 이 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