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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by 아토 (선물) 2025. 4. 22.

 

율량천

 

항암 치료의 고통은 단지 육체의 아픔만이 아니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얼굴,
열이 오를 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리고 가족에게 짜증을 내고 후회하는 스스로의 모습까지.

 

하지만 그런 저를 보며 더 단단해지는 남편과 아들.
그들이 마련해 준 '새로운 시작의 공간'에서
저는 다시 살아보기로 다짐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거울속의 나

1. 거울 속 낯선 사람, 그리고 사라진 나의 눈

아프고 나니 거울조차 자주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외모는 우선순위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앞에 섰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알지 못하는 낯선 얼굴이 서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눈썹과 속눈썹도 거의 다 빠져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건 눈이었습니다.
그 눈을 감싸주던 눈썹,
눈빛을 부드럽게 해 주던 속눈썹이 사라지고 나니
제 눈도, 표정도, 감정도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깨달았습니다.
그 작은 것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요.
눈썹과 속눈썹조차도 제 '존재감'이었음을요.


2. 누구도 밉지 않은데, 나 자신이 밉습니다

그날도 남편과 아들이 잠시 외출했습니다.
사무실에 잠깐 다녀온다고 했을 때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몸 상태는 순식간에 변했습니다.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몸은 움직이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얼음팩은 멀리 있었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싶어도 손끝 하나 뻣뻣했습니다.

결국 남편과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열이 나요. 빨리 좀 와줘요.”

하지만 제 마음처럼 바로 달려올 수는 없었고,

그 시간 동안 눈물만 흘렀습니다.

그 눈물은 가족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남편에게
“나 죽으라고 혼자 두는 거예요?”라고 화를 냈습니다.
숨이 가쁘게 뛰어온 아들에게도
“엄마 없었으면 좋겠지?”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벌써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너무 외로웠고, 너무 아팠을 뿐이었습니다.


3. 나만을 위한 집, 다시 살아보기로 한 날

4층 집에서 외출을 하려면
아들이 업고 내려가든지,
일회용 장갑을 끼고 난간을 붙잡은 채
한 손은 아들의 부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병원 가는 날이 아니면
외출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그런 저를 안타깝게 여겼는지,
남편과 아들이 어느 날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물이 보이는 마당 있는 1층 집.
제가 좋아하는 무심천 근처.
운동도 조금씩 할 수 있을 만큼 평지에 있는 집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는 겁니다.

 

냉장고도 새로 들여오고,
세탁기도, 거실 쇼파도
전부 저에게 맞춰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양쪽에 소변 주머니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기존 소파는 원목소파로 바꿨다고 합니다.

 

내가 이 집 기운이 안 좋아서 암에 걸린 것 같다고

투정하는 것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철없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옮기고,
마지막엔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설렘 반, 두려움 반.
새로 이사 온 집은
온전히 저를 위한 배려로 가득했습니다.

 

그날, 저는 다시 다짐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그들의 사랑 안에서 다시, 살아보겠다고.


마무리

항암 치료의 고통은
몸이 아닌 마음에도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만든 이 집에서,
저는 매일 작은 희망을 꿈꿉니다.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내일도, 그다음 날도
그들의 사랑 안에서
다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