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두 번의 투석으로 신장이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항암 수치도 호전되어 몸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지만, 마음속은 복잡했다. 병원 침상에 누워 하늘을 보다 문득문득 올라오는 후회, 분노, 용서의 감정들. 몸이 살아나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 비로소 진심 어린 기도가 시작되었다.
1: 기적처럼 멈춘 투석
6월 초, 나는 충북대병원 투석실에서 첫 투석을 받았다. 긴장 속에 들어선 투석실은 어쩐지 무겁고 정적이었다. 목에는 굵은 튜브가 꽂혔고, 양쪽 신장엔 소변통이 달린 채, 나는 조심조심 병원 복도를 걸었다.
소변 주머니 세 개를 들고 걷다 보면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동정인지 놀람인지 모를 그 시선에 처음엔 마음이 철렁했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저를 보고 위안을 삼으세요. “나는 아직 저 정도는 아니야” 하면서 힘을 내보세요.’
왜냐하면 나도 그랬으니까요. 누워서 이동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그래도 나는 아직 걸어 다닐 수 있잖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거울 삼아 버텨내는지도 모릅니다.
두 번의 투석 후, 믿기 힘든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투석은 안 하셔도 되겠어요.”
의사 선생님의 얼굴에는 희망이 묻어 있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물론 신장에 연결된 소변줄은 여전히 필요했지만, 목에 연결됐던 투석 튜브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습니다.
투석대에 무표정하게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그 시간들이, 잠시나마 내 삶을 붙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2: 창밖을 보며 흔들리는 마음
몸이 조금 나아지자, 그제야 내 마음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4층 창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구름이 그냥 구름이 아니었습니다.
길게 흘러가는 구름이 사람 얼굴처럼 보이고, 동물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오래전 엄마 얼굴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아파야 했을까?’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 더 많이 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사랑하고, 용서하고,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그런 생각들이 밀려올수록 후회는 점점 커졌고, 가슴은 먹먹해졌습니다.
3: 분노와 용서 사이의 줄타기
몸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서운하게 했던 사람들, 상처 줬던 말들, 무심했던 태도들.
‘그렇게 나를 무시하더니 결국 벌 받을 거야.’
‘나를 몰라준 너도 언젠가 아파봐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지.’
속으로 분노를 쏟아냅니다. 이불 속에서 눈물과 함께 그들을 저주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보면, 또 다른 감정이 올라옵니다.
‘아니야… 그 사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내가 너무 예민했을지도 몰라.’
그러면서 그들을 향해 쏟아낸 말들을 주워 담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용서를 빕니다.
그게 요즘 나의 일상입니다.
화냈다가, 울었다가, 또 용서하고…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도 속을 떠다닙니다.
하지만 이 감정들도, 어쩌면 회복의 일부일지 모릅니다.
몸처럼, 마음도 천천히 치유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요.
마무리: 다시, 오늘을 산다
오늘도 병원 침상에 누워 구름을 봅니다.
여전히 구름은 흘러가고, 나는 그 아래에서 살아 있습니다.
기적처럼 멈춘 투석, 나아지고 있는 수치, 걸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도 감사하는 나.
그 와중에도 마음은 요동치고, 때론 미움과 후회, 자책과 눈물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조차 나를 살아있게 한다는 걸 요즘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내일도 다시, 오늘처럼 버텨내보렵니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될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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