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3일, 충북대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마지막 힘을 내어 몸을 추스르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방사선 치료 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상태였고, 새벽부터는 소변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는 제 몸이 얼마나 위급한 상태였는지를 진료실에서 처음 들었고, 급히 입원해 각종 응급 처치를 받았습니다. 그 순간에도 함께 해준 아들, 그리고 낯선 몸을 마주한 아침의 거울 앞에서의 고백까지, 그 하루를 담담히 기록합니다.
1. 끝까지 웃고 싶었지만
2025년 6월 3일, 기력이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있는 힘을 다해 목욕을 하고 예정대로 충북대병원으로 향했습니다.
12시까지 도착해 채혈을 마치고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정신은 몽롱했고 몸은 축축 처져 있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섰을때 채혈결과가 안좋았는지 저를 유심히 바라보시던 선생님께서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소변 못 보시죠?”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습니다. 선생님은 곧바로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암 수치가 880이 넘었어요. 응급 상황입니다. 지금 당장 입원하셔야 해요.”
그렇게 급히 2인실 병실로 옮겨졌고, 곧바로 CT와 각종 검사가 이어졌습니다. 구토는 끊이지 않았고, 소변줄을 삽입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결국 양쪽 신장에 튜브를 삽입해 소변통을 달아야 했고, 투석을 위해 오른쪽 목엔 굵은 튜브가 세 개 삽입됐습니다. 혹시나 만성 투석으로 이어질지 모르기에 왼팔은 보존해야 한다는 말이 공포로 다가옵니다.
투석실에 들어섰을 때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낯섦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몸을 빌려 이 자리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내 오른손 위로 따뜻한 온기가 내려앉았습니다. 아들이였습니다.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젖은 눈동자를 감추려는 듯 고개를 숙였지만, 그 조용한 울림은 내 심장 깊숙이 전해졌습니다.
“엄마, 투석 하나도 안 아프데요. 5시간 정도 걸린다고하니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쉬고 계시면 된데요.”
그 말 한마디에 울컥 눈물이 날 뻔했지만, 그 눈빛 속 눈물은 삼켜졌습니다. 저도 울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첫 투석이 시작됐습니다.
2. 낯선 몸, 낯선 나
그날 밤, 긴 투석과 처치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새벽녘, 화장실에 들러 거울 앞에 섰는데 거기 낯선 여자가 서 있었습니다.
고개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고, 목에는 투석 튜브 세 개가 삽입돼 있었으며, 양옆으로는 신장에서 소변을 빼내는 길줄에 소변주머니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게 정말 나인가…’
하지만 이내 스스로를 다그쳤습니다. “살아야지. 내가 울면 아들도 힘들어하잖아. 울지 말자. 웃자. 웃어야 해.”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면서도, 아들은 짜증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나를 간호했고, 늘 곁에 있었습니다. 아침에 다시 채혈을 했고, 결과는 전날보다 조금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몇 번 더 투석을 진행한 뒤, 상태를 봐서 왼팔에 영구 삽입관을 설치할지 결정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냥 누군가에게 제 삶을 맡기고, 살려달라고, 어떻게든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렇게 빌 수밖에 없었습니다.
3. 간절함 앞에 나는 기도합니다
사실 저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세례도 받았고, 주일 예배도 빠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재미 삼아 무속신앙도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점을 보기도 하고, 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프고 간절하니, 처음으로 정말로 절실하게 하나님만 떠올랐습니다.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워 망설였지만, 결국 저는 마음속으로 “주기도문”을 되뇌었습니다. 그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픈 몸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습니다.
“ 000 몸아, 지금까지 함부로 대해 미안해. 너는 할 수 있어. 우리 힘내보자. 같이 이겨내 보자.”
내 몸을 원망하기보다는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내 생명을 부여잡고 있는 이 몸을 미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마무리: 오늘을 버텨냈으니, 내일도
오늘을 또 이렇게 버텨냈습니다. 어제보다 좋아졌다는 혈액검사 결과 하나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물론 아직 고비는 남아 있고, 몸은 여전히 낯설고 아픕니다. 하지만 저는 믿고 싶습니다. 이 낯선 몸 안에도 분명 다시 살아갈 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 힘은 내 곁을 지켜주는 가족, 사랑하는 아들의 묵묵한 눈빛에서 온다는 것을.
내일도 버틸 수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