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저는 자궁내막암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흔한 증상이라 여겼지만,
결국 제 삶 전체가 뒤흔들리는 순간이 되었죠.
이 이야기는 그날의 기록이며,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내기 위한 제 고백입니다.
1. 폐경기려니… 너무 쉽게 넘겼던 신호들
처음엔 하혈 증상이 있었어요.
폐경기 증상인가 보다 생각했죠.
그 나이에 흔히들 겪는 일이라며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게다가 저희 친정엄마는 93세까지 아무런 큰 병 없이 사셨어요.
고혈압도, 당뇨도 없이 평생 건강하게 사시다가 편안히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나도 건강한 체질일 거야’,
‘이 정도는 그냥 지나가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허리 통증이 시작됐어요.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계속 불편하더라고요.
그래도 괜찮겠지 싶어서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 먹었는데,
이상하게 통증이 더 심해졌어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그제야 가까운 산부인과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2. “큰 병원에 가보세요” 그 말이 시작이었어요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 침묵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잠시 후 조심스레 말씀하셨어요.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어요.
‘설마… 내가? 암? 말도 안 돼…’
마음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밀려들었죠.
그래도 정신을 붙잡고 서울 쪽 큰 병원 진료 예약을 시도했어요.
하지만 하필이면 그 시기가 의료진 파업 기간이었고,
10군데가 넘는 병원에서 예약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절망 속에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던 중,
충북대학교병원 산부인과에서 진료 예약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 통화는 제 인생에서 가장 감사했던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3. 결과를 듣기까지, 혼자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조직검사를 진행했어요.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은 정말 지옥 같았어요.
‘설마 아니겠지’, ‘염증이겠지’,
스스로를 수없이 위로하고 다독이면서도
결국엔 자꾸 인터넷을 검색하게 되더라고요.
‘자궁내막 두꺼움 = 자궁내막암?’
‘4기 증상… 혹시 나도?’
검색 결과를 보면 볼수록 더 무서워졌고,
결국 혼자서 조용히 화장실에서 울고 씻고 나오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가족에게도 말 못 했어요.
엄마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 며칠은 한 해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4. 진단의 순간 – “선생님, 저 살고 싶어요”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다시 갔던 날,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직감했어요.
“자궁내막암입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그런데 이어진 한 마디가 제 마음을 무너뜨렸어요.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두셨어요…?”
그 말에 그만 눈물이 쏟아졌어요.
어쩌면 나 때문일 수도 있다는 죄책감과
믿기지 않는 현실에 온몸이 떨렸어요.
입이 떨리면서도,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선생님… 저 살고 싶어요.
저 살아야 해요…”
제 말을 들은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잠시 조용히 저를 바라보셨어요.
그 눈빛…
동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안타까운 눈빛이었어요.
저는 평생 그 눈빛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날,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였고
동시에 가장 간절하게 살아야겠다고 외친 사람이었습니다.
▪ 마무리하며
그날 이후,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살고 싶었는지를 깨달았어요.
이제 저는 제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위로가 되길,
또 누군가에게는 경고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글이 제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작은 선물이 되길 바랍니다.
“ 엄마는 끝까지 살아보려고 애썼다고,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