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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없이, 두 다리로 걸어서 다녀온 투표소 – 오늘 저는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by 아토 (선물) 2025. 6. 5.

내덕 제2투표소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일.
암 투병 중인 몸이지만, 오늘은 두 발로 천천히 걸어 새동네경로당 1층 투표소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면역항암제로 치료를 받으며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나,
처음으로 모자 없이 외출도 해보았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벅찬 하루였습니다.


1: 모자 없이 외출한 오늘

거울 앞에 선 아침, 저는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빠진 머리 때문에 외출할 때마다 늘 모자를 써야만 했지만,
요즘 면역항암제로 치료가 바뀌면서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섬머슴애 같은 머리지만,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마주해보고 싶었습니다.
딸아이는 밝은 얼굴로 말해주었습니다.
“당신, 모자 안 써도 정말 멋져.”
그 말에 용기가 나서, 오늘은 처음으로 모자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2: 새동네경로당까지, 천천히 한 걸음씩

오늘 투표소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새동네경로당 1층이었습니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정말 천천히 걸었습니다.
계단이 없고 평평한 길이라 다행히 크게 무리는 없었지만,
저에겐 한 걸음 한 걸음이 참 깊고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투표소 입구에 도착했을 때,
숨이 조금 차기도 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맑고 고요했습니다.
신분증을 내고 제 이름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 안에서 조심스럽게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분명히 느꼈습니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내가 선택한 세상을 만들어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요.


3: 다음 선거에도 걸어서, 또 한 번

투표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길,
햇살이 제 머리 위로 따뜻하게 내리쬐었습니다.
모자 없이 걷는 길, 낯설지만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누구보다 작고 느린 걸음이었지만,
그 속엔 살아가고자 하는 저의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다음 선거에도 이렇게 걸어서, 다시 투표하러 갈 수 있을까?’
그 물음이 제 안에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다시 제 두 발로 걷기 위해,
오늘도 운동하고, 잘 먹고, 견디고, 살아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맺음말

오늘 하루는 제게 많은 의미를 남겼습니다.
모자 없이 외출한 용기,
두 다리로 걷고 서서 한 표를 행사한 당당함,
그리고 따뜻한 햇살 아래의 작은 평화.

 

몸은 여전히 치료 중이지만,
마음만은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오늘을 살아냈기에,
내일도 살아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한 표가,
그리고 오늘의 제 걸음이
더 나은 세상과 내일을 위한 씨앗이 되기를 소망합니다.